경제정보와정책

임금과 삶 그리고 제3자적 관점

부동산마이크로데이터 2023. 7. 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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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의 한영일기자의 "최저임금 논의구조 이게 최선인가?" 라는 글을 보며 제3자적 관점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단히 객관적인 태도의 글 속에서 노동계, 경영자단체, 공익위원을 고루 다루는 듯 하지만, 논지의 실상은 노동계를 성토하고 있다. 지역별, 업종별이 선진국에서 사용하는데 안되었다로 포문을 열었다. 이건 누가봐도 노동계가 반대한 사안이다. 그리고 터무니 없다는 듯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까고, 경영계를 부드럽게 다독거리듯 "사용자측도 크게 다르지않다"로 이어간다.

완전히 객관적인 입장이 될 수 없는 세상이다. 프로슈머라 불리며 생산자이자, 소비자다.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들의 일이다. 최저임금의 수혜를 받는건 대기업 생산직이라고 직설하는 기자의 글도 읽어봤다. 그 기자는 대기업 사무직의 급여는 관심없어 보였다. 생산직이 고액 연봉을 받으면 펜으로 돈버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보이나 보다. 대기업 사무직엔 명함도 못내밀 능력에 뒷목을 잡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큰 이익을 보는 이들은 뒤에 숨어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거대 세력이다. 그들은 치밀한 계산으로 서로의 심장에 비수를 꽂기위해 상대의 뒤로 숨어들어 있다. 하지만 한번도 서로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적은 없는, 말그대로 적대적 공생관계이다. 그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던 오르지 않던 상관이 없다.  적게 오르면 춘하추동 시위로 임금인상과 상여를 요구하고, 이익이 감소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직원을 해고시키고 마는 권력자들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관심갖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두개의 거대집단은 쑈를 하고 있는거다. 적당히 상대를 몰아부치던 자는 노동부장관도 되어보고, 경제수장이 되기도 한다. 그게 이치다. 거대한 카르텔을 공고히 하기위한 수단이자, 놀이터일 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

광고가 말해준다.

광고를 집행하는 거대집단들은 소비력을 필요로 하지만, 절대로 소비력을 갖춘이들에게 여유로운 삶이 있게 해선 안된다. 금융 시스템이 그렇다. 대출을 받거나, 할부를 하게해야 하니 말이다. 

비싼 가전이나 차량은 의례히 금융권 대출과 캐피탈을 이용해 미래의 소득을 당겨서 사도록 한다. 여유있게 사게 해선 안되는 거다. 사치품이 우리나라에서 명품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할부로의 경험을 시켜주는 것과 같다. 그래야 최대한의 이익을 볼 수 있으니까. 그래야 최저임금과 별개인 사용자단체의 고액연봉과 각종 배당이 가능해지니 말이다. 임금인상은 반대하며 매년 더 비싼 제품을 내놓고 사라고 광고한다. 마치 돈없는 이들에게 호혜를 베푸는 모습으로 멋진 모델들이 말하는 광고의 광고주가 바로 오늘의 최저임금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최고 수장들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수장밑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최대조직이 있다.

한통속이다.

편의점 사장의 어려운 사정을 보도하는 기자들은 본사의 과도한 수수료와 높은 임대료가 인건비보다 높음을 외면한다. 소상공인과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땀보다 자본이득을 더 중하게 생각하는 기자들. 먼발치에서 공정한 듯 거만떠는 공익위원들. 모두 한 통속이란 말이다.

소비침체가 가속화하며, 무역수지가 간신히 14개월만에 흑자가 된 이 시점에 물가상승률이 2.7프로로 낮아졌다고 말하며 금리인하를 성급히 말하는 고액 자산가들도 마찬가지다.

제안하고자 한다.


최저임금과 그 언저리의 소득을 얻는 모든 이들이여 최소한의 소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어차피 소비침체가 시작되어 수입량이 수출량의 감소를 압도하는 시점에서 그대들 스스로를 지켜라.

그대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갈 소비력을 아끼고 보존하라. 그게 거대한 카르텔을 부수는 시초가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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